한국 원전 수출 50년 제한, 구형 원자로만 해당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미국 웨스팅하우스 간의 지식재산권 분쟁이 타결되면서, 50년간 원전 수출 제한이라는 조건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제한은 기존 구형 원자로 모델에만 적용되며, 새로운 기술 개발을 통해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 원전 산업이 미국 의존형 기술에서 벗어나 독자적 원천기술을 확보하려는 전환점에 서 있는 상황이다.

한국 원전 기술 변천사
한국 원전 기술 변천사

수출 제한 대상은 OPR·APR 구형 모델에 한정

20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의 지식재산권 분쟁 타결 협정서 대상은 OPR과 APR이다. 이번 합의로 인해 한국은 50년간 북미, 체코를 제외한 유럽연합(EU) 가입국, 일본 등에는 원전을 수출할 수 없게 됐다. 또한 그 외 지역에 원전을 수출하려면 1기당 6억5000만달러(약 9000억 원)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와 1억7500만달러의 로열티를 웨스팅하우스에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러한 제한 조건이 모든 원자로 기술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해당 내용은 모두 OPR과 APR 등 기존 모델에 한정된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한국의 원전 기술은 1990년대 미국 컴버스천엔지니어링(현 웨스팅하우스)에서 원천기술을 도입해 개발된 2세대 경수로 OPR1000에서 시작됐다. 현재 주력 모델인 APR1400은 이를 발전시킨 3세대 경수로로, 최근 체코 수출 본계약을 앞둔 APR1000도 APR1400에서 용량만 조정한 버전이다.

신기술 개발로 50년 제약 조건 무력화 가능

원전업계는 이번 합의가 오히려 한국 원전 기술의 자립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수원 등이 새로운 기술 개발에 성공하고 이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신규 노형 설계도가 웨스팅하우스가 보유한 원천기술과 다르다는 점을 입증하면 50년 계약 기간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이 독자적인 원천기술을 확보할 경우, 웨스팅하우스의 지식재산권과 무관한 새로운 원자로를 개발해 수출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지식재산권 논란의 대상이 되는 구형 노형으로 협정 대상을 한정한 것은 신기술 개발 이후 분쟁의 불씨를 미리 제거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해석된다.

한국의 원전 기술력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 UAE 바라카 원전 건설 성공, 체코 원전 수주 등으로 입증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완전한 기술 자립을 이룰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는 상황이다. 특히 소형모듈원자로(SMR), 4세대 원자로 등 차세대 원전 기술 분야에서는 한국이 선도적 위치에 있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

한수원, 3.5세대 경수로 개발로 미국 기술 의존 탈피 추진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미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한수원 품질기술본부는 올해 상반기 대형 원전 신규 노형 개발에 들어갔다. 이는 아예 한국이 원천기술을 보유한 '3.5세대' 경수로를 새로 설계해 국내외 원전 건설에 활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이번 신규 노형 개발에 대해 "(지식재산권 분쟁 대상이 된) 미국식 원자로 핵증기 공급 계통(NSSS) 설계도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 미국 기술에 의존했던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새로운 3.5세대 경수로가 성공적으로 개발될 경우, 한국은 웨스팅하우스와의 합의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 원전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로열티나 물품 구매 의무 없이 순수한 기술력으로 승부할 수 있어 가격 경쟁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차원에서도 원전 기술 자립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소형모듈원자로(i-SMR) 상용화를 통해 2030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한수원의 기술 개발 노력이 결합되면, 한국 원전 산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이번 50년 수출 제한 합의는 단기적으로는 제약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원전 기술의 완전한 자립을 위한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구형 기술에 얽매이지 않고 차세대 원전 기술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한다면, 한국은 명실상부한 원전 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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